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브렉시트, 재생에너지, 삼중창)

저도 처음엔 '숫자'보다 '느낌'을 더 믿었습니다. 물가가 3% 올랐다는 통계보다, 마트에서 계산할 때 느끼는 체감이 훨씬 실감났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느낌'이 얼마나 자주 틀리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바츨라프 스밀의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는 그 틀림의 구조를 데이터로 조목조목 짚어주는 책입니다. 브렉시트부터 재생에너지, 단열 성능까지, 우리가 막연히 믿어온 것들이 실제 수치 앞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브렉시트, 숫자보다 감정이 이긴 날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을 때, 저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불리하다는 분석이 차고 넘쳤는데도 투표 결과는 달랐습니다. 책에서는 그 이유를 숫자로 설명합니다. 영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제조업 비중은 급감했으며, 1인당 GDP(국내총생산)도 아일랜드 평균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GDP란 한 나라에서 일정 기간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총가치를 뜻하는 지표로, 국가 경제력을 가늠하는 핵심 수치입니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숫자보다 분노를 선택했습니다. "우리 버스에 써붙인 약속"이 데이터보다 더 강하게 작용한 셈입니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잘못된 주장으로 순간적인 자부심을 줄 수 있어도, 덧없는 구호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비단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내 선거 때마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봐 왔으니까요.

민주주의 투표가 반드시 합리적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것, 그 방증을 브렉시트는 아주 선명하게 남겼습니다. 이후 영국 경제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영국 국가통계청(ONS)의 GDP 추이 데이터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의 역설, 텀블러와 에코백이 떠올랐습니다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이 '친환경'이라는 인식은 이제 거의 상식처럼 굳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제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 하나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카페에서 텀블러를 꺼낼 때마다, 과연 이 텀블러를 생산하는 데 들어간 자원을 회수하려면 몇 번이나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에코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환경을 위한다는 뿌듯함이 있었는데, 사실 그 가방이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간 에너지를 상쇄하려면 수십 번은 반복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조금 씁쓸해졌습니다.

풍력발전도 구조가 비슷합니다. 터빈(turbine)이란 바람, 물, 증기 등의 유체 에너지를 회전 운동으로 변환하는 기계 장치를 말합니다. 이 터빈을 제작하고 설치하는 과정에서는 철강, 콘크리트, 플라스틱이 대량으로 소비됩니다. 그 원자재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데 화석연료가 쓰입니다. 즉,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만드는 설비 자체가 화석연료 위에 서 있는 셈입니다.

탈탄소화(decarboniz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향으로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는 것 자체는 분명 탈탄소화를 향한 흐름입니다. 하지만 그 전환 과정의 이면에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남아 있다는 점은 직시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재생에너지 보고서 2023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산업 부문의 화석연료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날수록 전기 요금이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도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설비 투자 비용, 계통 연계 비용, 간헐성 문제를 보완하는 백업 전원 비용이 함께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삼중창 단열 수치, 직접 살면서 확인했습니다

어릴 적에 살던 집은 나무 창틀에 단일창이었습니다. 문을 꽉 잠가도 겨울이면 창문 아래에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습니다. 창틀 틈새에 신문지를 쑤셔 넣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 집에서 나온 이후, 이중창이 설치된 아파트에 처음 살았을 때 그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책에서는 창문의 단열 성능을 R값으로 설명합니다. R값(열저항값, Thermal Resistance)이란 특정 재료가 열의 이동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차단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값이 높을수록 단열 성능이 좋다는 뜻입니다. 단일창의 R값은 약 1 수준인 반면, 삼중창은 이론적으로 단일창 대비 에너지 손실을 9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수치를 보는 순간, 제가 살던 나무 창틀 집의 그 매서운 추위가 괜한 게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이중창(double-glazed window)은 두 겹의 유리 사이에 공기층 또는 아르곤 가스를 넣어 열 전달을 차단하는 창호 구조를 말합니다. 삼중창은 여기에 유리 한 겹을 더한 구조입니다. 제가 경험한 이중창의 또 다른 효과는 소음 차단이었습니다. 창 밖 도로의 차 소리가 현저히 줄었고, 바로 옆 공사 소리 앞에서는 역부족이었지만 어지간한 생활 소음은 확실히 잡아줬습니다.

단열 성능을 높이는 핵심 요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벽 단열재의 R값: 밀도가 높은 콘크리트나 벽돌보다 내부 공기층을 활용한 구조가 단열에 유리합니다.
  2. 창호 구조: 단일창보다 이중창, 이중창보다 삼중창이 열 손실을 크게 줄입니다.
  3. 기밀 시공: 창틀과 벽 사이의 틈새를 완벽히 막는 것이 단열재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기본입니다.
  4. 자연 채광 확보: 단열이 잘 된 창을 넓게 설치하면 빼앗기는 열보다 햇볕으로 얻는 열이 더 많아집니다.

단열을 위해 창을 줄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라고 봅니다. 고성능 창호를 쓰면서 채광을 최대한 확보하는 쪽이 난방비를 줄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숫자는 틀리지 않는다, 다만 읽는 사람이 틀린다

이 책의 원제는 『Numbers Don't Lie』입니다. 숫자 자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계속 마음 한편에 걸리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숫자를 만드는 사람, 또는 숫자를 선택적으로 골라서 제시하는 사람에 의해 통계는 얼마든지 오독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 바츨라프 스밀이 50년 가까이 환경, 식량, 에너지, 인구, 공공 정책을 넘나들며 연구해온 이유도 결국 그 지점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숫자를 어떻게 고르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 판단력이 없으면 숫자도 결국 왜곡의 도구가 됩니다. 한국 사람이 마늘을 얼마나 먹는지 체감하지 못해도, 전 세계 통계에서 압도적 1위라는 수치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과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 그게 이 책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핵심입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에 수치로 된 근거가 붙는 경험은 꽤 묵직했습니다. 브렉시트든, 재생에너지든, 집 창문 하나든, 숫자를 보는 습관이 생기면 세상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이 책이 잘 읽히지 않는 분이라면 관심 있는 챕터 하나만 골라서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각 주제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순서 없이 읽어도 됩니다.

--- 참고: https://blog.naver.com/leehmccc/222543461711 https://www.ons.gov.uk/economy/grossdomesticproductgdp https://www.iea.org/reports/renewables-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