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공격 (직장 내 차별, 번아웃, 조직 심리)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직장에서 받은 상처의 원인을 정확히 몰랐습니다. 누군가 대놓고 욕을 한 것도 아니고, 공식적으로 불이익을 받은 것도 아닌데 퇴근하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찝찝하고 에너지가 빠져있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미세공격(microaggression)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미세공격 주의보


미세공격이란 무엇인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봤습니다

미세공격(microaggression)이란 뺨을 때리듯 명확하게 드러나는 폭력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상대를 찌르는 언어적·비언어적 공격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뭐 그게 그렇게 큰 문제야?" 싶을 정도로 사소해 보이지만, 반복될수록 당하는 사람의 심리를 서서히 갉아먹는 방식입니다.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에이, 그게 뭐라고'라는 반응이 먼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직장 내 갈등이라 하면 언성을 높여 싸우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런 굵직한 사건들에 비하면 미세공격은 너무 지엽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책을 중반쯤 넘겼을 때 제가 경험했던 장면들이 하나씩 겹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사처럼 건네는 말인데 어딘가 날이 서있던 동료의 한마디. 회의 중에 제 의견이 묵살되는 것 같던 분위기.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 같은데 듣는 순간 기분이 확 나빠지던 선배의 말. 이것들이 모두 미세공격의 범주 안에 있었습니다.

번아웃(burnout)이란 과도한 업무나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된 상태를 말합니다. 직장인들이 번아웃을 겪는 이유를 흔히 과중한 업무량으로만 설명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업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이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쌓여서 탈진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직장 내 차별,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습니다

저는 직장을 여러 번 옮겨 본 사람입니다. 경력직 입사자로서 새로운 조직에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그 묘한 소외감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은근하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있었고, 내가 주류가 아니라는 걸 굳이 상기시켜주는 발언들도 있었습니다.

직장 내 차별은 일반적으로 성별, 나이, 학벌 같은 명확한 기준으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그보다 훨씬 미묘한 지점에서 더 자주 발생합니다. 조직이 암묵적으로 설정해놓은 '표준'에서 벗어났을 때 받는 눈빛,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편을 가르는 분위기, 특정 집단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이 무심코 튀어나오는 순간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더 불편했던 건 따로 있었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의도 없이 던진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됐을 경우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몇 번은 의도적으로 그 사람이 기분 나쁘라고 던진 말도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끌고 가기 애매한 상황에서 그 경계를 살짝 넘는 말로 기분을 풀었던 것입니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란 조직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실수를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뜻합니다. 구글이 수년간의 팀 연구를 통해 고성과 팀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개념이기도 합니다(출처: Google re:Work). 미세공격이 반복되는 조직에서는 이 심리적 안전감이 가장 먼저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게 무너지면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가 시작됩니다. 조용한 퇴사란 실제로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몸은 있지만 마음과 에너지는 이미 빠져나간 상태를 뜻합니다.

번아웃과 조직 에너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위험합니다

직장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방식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업무 과부하나 야근이 문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여러 조직을 다니면서 느낀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체력적인 피로보다 훨씬 더 빠르게 사람을 소진시킨다는 점입니다.

비가시적 스트레서(invisible stressor)란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심리적 부담을 주는 환경 요인을 말합니다. 미세공격이 바로 이 비가시적 스트레서의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대놓고 소리를 지르는 상사보다 매번 모호한 말로 사람을 갸우뚱하게 만드는 동료가 장기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빼앗아갑니다.

실제로 한국 직장인의 정신건강 문제는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연구에 따르면 직장 내 대인관계 스트레스는 업무 강도보다 번아웃과 더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미세공격이 단순히 개인의 기분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생산성과 직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리젠티즘(resenteeism)이란 번아웃의 파생 개념으로, 직장에 불만이 있지만 퇴사도 못하고 그냥 버티면서 분노를 쌓아가는 상태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분노 구직' 상태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세공격이 누적된 조직에서 이런 상태의 직원 비율이 높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조직 심리를 바꾸는 건 결국 개인의 의식 훈련에서 시작됩니다

미세공격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면서 처음에는 "그러면 피해자가 더 강해지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직장 내 갈등 해결 조언은 피해자의 대처 능력을 키우는 방향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방향이 완전히 틀렸습니다.

미세공격은 피해자가 아무리 조심해도 피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공격이 워낙 모호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피하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결국 핵심은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지 인식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훈련입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한 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해봤던 방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내가 배제되거나 소외됐다고 느꼈던 순간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본다. 어떤 말이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억한다.
  2.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했던 말이나 행동을 돌아본다. 당시 나는 어떤 의도였는지, 상대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를 분리해서 생각해본다.
  3. 내가 특정 집단(나이, 성별, 학력, 출신)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기대나 판단 기준이 있는지 점검한다.
  4. 말을 뱉기 전에 "이 말이 상대의 정체성이나 배경을 평가절하하는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가"를 한 번 더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솔직히 이걸 매번 의식하면서 말하는 게 가능하겠냐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훈련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과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미세공격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생판 모르던 사람끼리 모여 매일 같은 공기를 마시다 보면 크고 작은 마찰이 생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존재한다는 걸 서로 인지하는 것, 그리고 내가 먼저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글을 읽고 오늘 자신이 뱉었던 말 한마디를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됐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 참고: https://www.bloter.net/news/articleView.html?idxno=635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