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0 법칙 (파레토 법칙, 효율성, 행복의무)
열심히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 둘이 같다고 믿었습니다. 어두울 때 나가서 어두울 때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면서도 뭔가 뿌듯했으니까요. 그런데 리처드 코치의 『80/20의 법칙』을 읽고 나서, 그 뿌듯함이 착각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 80/20 법칙 |
사실 저도 이 법칙을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8:2의 법칙'이라고 부르며 어렴풋이 느껴온 게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이해하던 방식은 책과 결이 좀 달랐습니다. 저는 이 법칙을 주로 경쟁의 맥락에서만 썼거든요. 어떤 시험이나 자격증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80% 정도는 열심히 하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진짜로 움직이는 사람은 나머지 20%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냥 성실하게 임하기만 해도 출발선에서 이미 80%는 앞서 있는 셈이고, 진짜 싸움은 그 위 20% 안에서 벌어진다고 봤습니다.
그런 식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으니 이 책이 행복이나 삶의 방식 이야기를 꺼낼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효율에 관한 경영서 정도로만 생각했거든요.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이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비롯된다는 통계적 경향을 뜻합니다. 19세기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가 이탈리아 토지의 80%를 상위 20%의 인구가 소유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름이 붙었습니다. 처음 들으면 '설마 그럴까?' 싶지만, 매출의 80%가 20%의 고객에게서 나온다거나, 소프트웨어 버그의 80%가 20%의 코드에서 발생한다는 식의 사례들이 실제로 확인될 때마다 묘하게 납득이 됩니다.
효율성이라는 단어에 행복을 붙이면 어떻게 되나요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효율성(Efficiency)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생산성 도구로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효율성이란 투입 대비 산출의 비율을 극대화하는 것을 뜻하는데, 보통은 업무나 비용 절감 맥락에서만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리처드 코치는 이 개념을 삶 전체에 들이밀었습니다. '당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활동이 전체의 20%도 안 될 텐데, 그 20%에 시간을 두 배 이상 쏟을 생각을 해봤냐'고 묻는 방식으로요.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결국 '행복은 의무다'였습니다. 효율을 다루는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처음엔 좀 과하다 싶었는데, 읽다 보니 설득이 됐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80%의 시간을 쏟아붓는 삶이 진짜로 의무처럼 느껴질 때,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본질적인 의무가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제가 직접 이 시각으로 하루를 돌아봤을 때, 실제로 의미 있다고 느낀 시간은 전체의 20%가 채 안 됐습니다. 나머지 80%는 바쁘다는 느낌만 있었고, 끝나고 나면 뭘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리처드 코치가 제시한 80/20 법칙의 핵심 적용 영역입니다.
- 업무: 성과의 80%를 만들어내는 20%의 핵심 업무를 파악하고 거기에 집중한다.
- 관계: 삶의 행복에 진짜로 기여하는 20%의 관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 시간: 바쁘게 채운 80%의 시간을 줄이고, 실질적인 산출을 만드는 20%의 시간을 늘린다.
- 소비: 전체 지출의 80%를 차지하지만 만족도에는 별 영향 없는 항목들을 찾아낸다.
그러면 이 법칙을 계속 반복하면 어떻게 될까요
한 가지 솔직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80/20 법칙을 한 번 적용하면 효과가 나타납니다. 무질서했던 일상에서 핵심 20%를 찾아내면 분명히 달라지는 게 보이니까요. 그런데 그 20%에서 다시 80/20을 적용하고, 또 그 결과에 적용하고를 반복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어느 순간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의문은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회복력의 시대』를 읽으면서 좀 더 구체화됐습니다. 회복력(Resilience)이란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시스템이 본래 상태로 되돌아오는 능력을 뜻합니다. 리프킨은 효율성과 회복력이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시스템은 그 자체로 취약해집니다. 군살을 다 없앤 구조일수록 예상치 못한 충격에 쉽게 무너진다는 논리입니다. 공급망 위기나 팬데믹 같은 상황에서 고효율 체계가 먼저 흔들렸던 사례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참고: 『회복력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그래서 저는 80/20 법칙을 만능 공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지금 너무 비효율적인 상태라면 강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효율만 극단으로 추구하다 보면 여유나 유연성이 사라지고, 결국 예상치 못한 변수 하나에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직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둬야 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ity)이라는 개념도 비슷한 지점을 시사합니다. 파레토 최적이란 어느 한 주체의 상태를 개선하려면 반드시 다른 주체의 상태를 악화시켜야 하는 상황, 즉 더 이상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변화가 불가능한 균형 상태를 뜻합니다. 효율화도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출처: ScienceDirect - Pareto Optimality)
그래서 저는 지금 어떻게 쓰고 있을까요
제가 이 법칙을 제대로 삶에 적용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직 아닙니다. 이론은 알겠는데 실제로 '이게 나의 20%다'라고 확신하고 거기에만 집중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파악하는 것 자체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다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바쁘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됐습니다. '지금 이 분주함이 진짜 20%를 향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80%를 채우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꽤 불편하고, 또 꽤 유용했습니다.
시간 배분(Time Allocation)이란 한정된 시간 자원을 어떤 활동에 얼마나 할당할지 의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대부분 의식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는데, 80/20 법칙은 그 흐름에 처음으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효율을 논하면서 '행복은 의무'라는 문장을 꺼내는 책이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한 것 같습니다. 바쁘게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을 구분해보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그 구분을 완벽하게 해내진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전보다는 조금 더 자주 그 질문 앞에 섭니다. 혹시 지금 80%의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 없으셨다면, 딱 그 지점에서 이 책을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bookthink.tistory.com/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