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종말, 접속 시대 (플랫폼, 구독경제, 문화자본주의)
솔직히 저는 '소유의 종말'이라는 제목을 보고 약간 겁이 났습니다. 2001년에 나온 책인데, 25년이 지난 지금 읽으니 소름이 돋더군요.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통찰을 했을까요? 제가 대학 시절 교수님 과제로 이 저자의 '엔트로피'를 읽었을 때는 그냥 독후감 쓰려고 마지못해 읽었는데, 이번엔 제목에 이끌려서 자발적으로 손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소유가 아닌 접속으로 살아가는 시대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요.
| 소유의 종말 |
플랫폼이 권력이 된 시대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예로 들어볼까 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게임을 하려면 시내 게임샵에 가서 네모난 패키지 박스를 몇만 원 주고 사와야 했습니다. CD를 컴퓨터에 넣고 설치하면 그 게임은 죽을 때까지 제 소유였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스팀(Steam)이나 에픽게임즈 같은 온라인 게임 포털에서 카드 결제만 하면 끝입니다. 오프라인에는 그 게임의 형체조차 없습니다. 제 책상 위에는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만 있을 뿐이고, 포털에 접속해야만 제가 수백만 원어치 게임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플랫폼(Platform)입니다. 플랫폼이란 쉽게 말해 사용자와 서비스 제공자를 연결해주는 중개 공간을 뜻합니다. 리프킨은 책에서 "네트워크는 시장을 대체하고, 소유는 접속으로 바뀐다"고 말했는데, 정확히 이 지점을 예측한 겁니다. 제가 실제로 써보니 플랫폼을 관리하는 기업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짜 권력자더군요. 테슬라, 애플, 구글,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의 플랫폼에 접속하는 순간, 그들은 막대한 이윤을 가져가기 때문입니다(출처: 매일경제).
리프킨은 이를 두고 "접속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간형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참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접속 받는 것이 권력인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구독경제와 소유 개념의 변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CD를 사서 방 한켠 CD장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게 음악을 소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멜론이나 스포티파이 같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월정액을 내고, 그때그때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 듣습니다. 이게 바로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입니다. 구독경제란 제품을 한 번 구매하는 대신 일정 기간 사용권을 구매하는 경제 모델을 말합니다. 저는 이 방식이 처음엔 좀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써보니 효율성이 엄청나더군요.
리프킨이 말한 대로 "소유권 중심의 시장 지향체제는 내 것과 네 것으로 경제활동을 확연히 구분하지만, 네트워크 기반 경제에서는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이라는 발상이 성공을 거둔다"는 게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실제로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출처: 통계청) 국내 구독경제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8조 원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 가전제품: 정수기, 공기청정기, 안마의자 등을 렌탈로 이용
- 자동차: 쏘카, 그린카 같은 카셰어링으로 필요할 때만 사용
- OTT 서비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으로 콘텐츠 접속
- 쇼핑 플랫폼: 쿠팡 로켓와우 같은 멤버십으로 배송·할인 혜택 접속
개인은 무한의 선택권을 갖지만, 정작 영원히 소유하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화폐로 각종 서비스에 대가를 지불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은 구독 시스템이 그 자리를 채워 들어왔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극강의 효율성을 가져다줍니다. 큰돈을 한 번에 들일 필요 없이 필요할 때만 쓸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 가격이 조금 비싸다고 느껴지긴 하지만요.
문화자본주의와 인간관계의 접속화
리프킨은 "산업자본주의가 문화자본주의로, 소유권이 접속권으로 변모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문화자본주의(Cultural Capitalism)란 물질적 생산보다 문화적 체험과 경험을 파는 사업이 각광받는 경제 체제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이제 물건보다는 경험을 사는 시대가 된 거죠. 저는 이 개념이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온라인에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넘쳐납니다. 각종 커뮤니티, 중고거래 앱, 동호회, SNS 등 개인은 그중 하나를 선택해 접속하고, 그곳에서 사람을 만납니다. 예전엔 오프라인에서 먼저 알고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지금은 반대입니다. 일단 온라인으로 알고, 그다음에 오프라인으로 옮겨오는 비중이 훨씬 많습니다. 접속 이후에 실제 터치가 일어나는 거죠.
리프킨은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계에 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훨씬 강도 높게 참여하고 있다"고 했는데, 제가 실제로 살아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조각조각 난 자신의 삶에서 어떤 부분이 원래 나였는지 찾아내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는 거요. 저자는 이를 두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시대가 됐다고 표현했습니다. 솔직히 이 말이 좀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이 뭘까요? 단순히 현상만 전망하고 끝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25년이 지나 중년이 된 제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은, 무한히 접속하는 이 세계가 개인의 가능성을 수십 배로 끌어올려준다는 거였습니다. 유명 강사의 특급 강의를 집에서 무료로 볼 수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에 '딸각' 클릭 한 번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장의 감동에는 못 미치지만, 텍스트로 전달되는 지식은 현장과 동일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접속이 주는 효율성은 분명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플랫폼을 지배하는 소수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 자신의 정체성마저 접속의 조각들로 쪼개지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리프킨이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결국 우리 각자가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참고: https://m.blog.naver.com/shinny96/222105849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