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회 (공론화, 표현의 용기, 경청의 한계)

솔직히 저는 '단속사회'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 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남의 말을 잘 듣고, 경청하는 사람이 되면 관계도 좋아지고 사회도 나아질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제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듣기만 하면 충분한가? 내 이야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진짜 소통이 가능한가? 저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것조차 요일과 시간, 장소를 규제받는 일상 속에서 이 책이 말하는 '단속'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단속사회란 무엇인가

단속사회(斷續社會)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타인을 감시하고 스스로를 검열하는 '단속(取締)'의 의미이고, 둘째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 자체의 연속성이 끊어진 '단속(斷續)'의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서로를 끊임없이 감시하면서도 정작 서로 이어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실제로 경험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제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것조차 무슨 쓰레기를 어느 요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규칙을 강요받습니다. 이런 지엽적인 규제가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역사적으로 개인주의, 자유주의, 법치주의 등의 사상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동시에 국가나 권력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분리하고 통제하려는 의도도 작용했다고 봅니다(출처: 국립중앙도서관).

결과적으로 현대인들은 사적인 문제를 공적인 이슈로 전환하는 능력이 약해졌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 이야기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사회와 개인이 단절되면서 서로에게서 배우고 발전하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장입니다.

경청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깨달음

저는 오랫동안 경청이야말로 좋은 관계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핵심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자기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오해하는 사람들,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에 무작정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전부 경청을 잘 한다면 사회는 매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제가 절반만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책에서는 "말이 나눔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심과 걱정이 타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설사 그것이 사적인 투덜거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모두의 이야기, 혹은 적어도 사회적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 대인관계를 돌이켜보니 저는 모든 문제를 제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했습니다. 논리적으로 전혀 손색이 없게 제 탓으로 돌릴 수 있었고, 그게 편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에도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에게만 의문을 쏘아붙이지 말고 바깥에 의문을 던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공론화의 중요성과 현실적 어려움

공론화(公論化)란 개인적인 문제나 의견을 사회적 차원의 논의 대상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 이야기'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공론화를 위해서는 자신의 문제를 남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성을 들여 표현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 부분에서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의문을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공론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일상적인 일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할 때 반감만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잘못이긴 하지만, 그들을 매력적으로 설득해서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여태껏 눈치만 보면서 살아온 습관도 있고, 잘 말하는 것을 배울 기회도 없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책의 해결책에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지금 사회에도 나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는 많습니다. 여러 기관의 민원 창구, 신문사, 방송사, 그리고 블로그나 SNS 같은 플랫폼까지 다양합니다. 문제는 표현의 방법이나 창구가 부족한 게 아니라, 개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아무도 남의 이야기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1. 강자의 목소리는 빠르고 광범위하게 사회로 퍼집니다.
  2. 약자의 목소리는 아무리 정성껏 표현해도 묻히기 쉽습니다.
  3. 이 차이는 표현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입니다.

사람이란, 아니 동물이란 자기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큰 문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남의 이야기도 들어줘야 합니다. 문제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부분에서 사회가 아주 적나라하게 등급을 매겨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표현을 위한 용기와 작은 실천

최근 우연히 본 시인 이규경의 '용기'라는 시가 제게 지침을 내려주었습니다.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 용기를 내야해 /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 그래서 나는 용기를 / 내었습니다 / 용기를 내서 이렇게 / 말했습니다 / 나는 못해요" 이 시는 표현하려면 우선 용기가 필요하다는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바로는, 현란한 말솜씨나 인간적인 매력도 중요하지만 용기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평소 '겁'은 진화의 소산이라면서 스스로 합리화하고 내버려두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겁은 조금씩 물리쳐야 할 때입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구조적인 압박을 받게 됩니다. 위로부터는 자기검열을 강요받고, 아래에서는 책임을 요구받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는 네 위치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를 묻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 땅에서 제멋대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를 침해받지 않기 위해서 남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단속해야 하는 피곤한 일상을 보내야 하는 사회가 더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의 탈출을 생각해 보지만 그 현실은 차갑습니다. 이미 현대 문명의 혜택을 받아왔던 사람이 대체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디로 도망갈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사회와 소통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딜레마를 안고서도 저는 작은 것부터 시도해 볼 용의가 있습니다. 정리한답시고 독후감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도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작업이니까요. 비록 서툴고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지라도, 이것이 입을 슬금슬금 여는 연습이 되리라 믿습니다.

결국 저는 이 책을 통해 경청과 표현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완벽한 공론화는 어려워도, 용기를 내서 작은 목소리라도 내보는 것. 그것이 단속된 사회에 작은 균열을 내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혼자가 편하고 간섭받기 싫지만 동시에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현대인의 모순. 저 역시 이 모순 속에서 조금씩 입을 열어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용기를 내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ezkorry.tistory.com/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