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제 얘기인 줄 알았습니다. 20대에 숱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도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면서 이 말을 얼마나 많이 속으로 삼켰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2025년 월급사실주의 동인이 펴낸 노동 앤솔로지로, 읽는 내내 불편하고 또 묘하게 위로가 됐습니다.
자기객관화: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나’ 사이
제가 처음 이 제목에 끌렸던 건, 딱 20대 시절 제 심리 상태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건 잠깐이야, 나는 이런 데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야”를 반복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버티는 힘이 되기도 했고, 동시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막는 방어막이기도 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 상황에서 자신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합니다. 어느 정도의 자기효능감은 동기 부여에 필수적이지만, 이것이 현실 인식과 지나치게 괴리될 경우 오히려 독이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강할수록 지금 이 자리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놓치게 되더라고요.
자기객관화(metacognition)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나를 얼마나 정확하게 보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저는 숱한 좌절과 실패를 겪고 나서야 이 능력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어디서라도 나를 써주는 것에 감사하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일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한두 달이지, 매일 반복되는 단순 업무 앞에서는 다시 “내 능력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돈을 받는다”는 생각이 차오르기는 했지만요.
책 속 주인공들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이 일이 싫다”가 아니라, “이 구조가 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감각이 정확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과대평가인지를 책은 친절하게 판단해주지 않습니다. 독자 스스로 비교하고 검증하게 만드는 방식이 오히려 더 불편하게, 그리고 오래 남게 했습니다.
노동 존엄: “쓸모 있음”이라는 이름의 폭력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머릿속을 맴돈 단어는 ‘존엄’이었습니다. 특히 조승리 작가의 표제작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와 황시운 작가의 〈일일업무 보고서〉를 읽으면서 그 생각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일일업무 보고서〉에 등장하는 중증장애인 세진은 재택근무를 하며 매일 업무 보고서를 보냅니다. 그런데 그 보고서를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됩니다. 회사가 그를 고용한 이유는 장애인 의무고용률(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28조에 따라 상시 50인 이상 사업주는 일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는 제도)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의무고용률이란 기업이 일정 수 이상의 장애인을 반드시 고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한 비율을 뜻합니다. 이 수치에 따르면(출처: 고용노동부) 2024년 기준 민간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3.1%입니다. 숫자로는 존재하지만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황, 이게 바로 이 작품이 보여주는 노동 존엄의 붕괴입니다.
제 경험에 비추면 이 감각은 낯설지 않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누군가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제대로 읽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던 날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의심이 반복될 때 생기는 감정을 소진(burnout)이라고 부릅니다. 소진이란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로 인해 에너지가 고갈되고 업무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이를 공식 직업 현상으로 분류했습니다(출처: WHO).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공유하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신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감각을 지속적으로 경험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으려 원칙과 성실함을 붙잡습니다.
- 시스템이나 구조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조용히 버티거나 작은 연대를 선택합니다.
- 그 버팀이 숭고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처절하게 소모적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노동 문제는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개인 역량의 문제로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역량을 키우는 것은 분명 필요하지만, 구조 자체가 특정 노동자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평가하도록 설계된 경우라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월급사실주의: 판타지 없이 직면하는 노동의 민낯
‘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 자체가 흥미로웠습니다. 싱크대 사실주의(kitchen sink realism)라는 개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싱크대 사실주의란 1950~60년대 영국 문학과 영화에서 등장한 운동으로, 노동 계층의 평범하고 때로는 불쾌한 일상을 미화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장르입니다. 그 정신을 한국의 현재 노동 현실에 그대로 이식한 셈입니다.
이 시리즈는 2023년부터 매년 한 권씩 발간됩니다. 첫 해는 먹고사는 생존 자체를, 두 번째 해는 조직 내 관계와 불평등을, 그리고 2025년 세 번째 권에서는 정체성과 존엄, 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내면을 다룹니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경력단절 여성, 해외 청년 노동자까지 이른바 노동 현장의 경계인(marginal worker)들, 즉 주류 노동 담론에서 비껴나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플랫폼 노동(platform labor)이라는 개념도 이 책에서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플랫폼 노동이란 앱이나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일감을 얻고 수행하는 노동 형태로, 고용 관계가 불분명하고 사회보험 적용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김동식 작가의 〈쌀먹: 키보드 농사꾼〉은 게임 내 재화를 현금으로 바꾸는 작업을 생계로 삼는 인물을 통해 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디지털 시대의 노동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개인이 받는 보상은 생산해낸 가치에 비례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치를 생산하는 방식을 개인이 개선하는 것과, 사회가 그 가치를 더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동시에 필요합니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면 나머지 한쪽이 희생됩니다. 이 책은 그 균형에 대한 질문을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던집니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멍했습니다. 제가 20대에 “나는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그 자조가, 사실은 존중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그 자조 뒤에 얼마나 많은 자기합리화가 숨어 있었는지도 보였습니다. 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싶은 분이라면, 출퇴근 전철 안에서 한 편씩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제목이 좀 민망하더라도, 그걸 읽는 손이 부끄럽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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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brunch.co.kr/@copyboy/151